인터뷰│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대규모시설에 갇힌 장애인들의 꿈

2017-02-20 10:39:11 게재

짜여진 틀에 맞춰 삶 기획할 수밖에 없어 … "장애여성 '재생산권' 보장해야"

"장애인들은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꿈을 꾸는 일조차 자유롭지 않아요. 획일적으로 구성된 시설 위주의 제도 안에서 삶을 기획해야 하죠. 비장애인들과 달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정한 뒤가 아니라 이미 짜인 틀 안에서 한정적으로 꿈을 맞춰나가야 하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개인의 꿈을 제한하는 일들이 합법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현실이죠."

15일 오후 서울 천호동에서 만난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을 배제하는 제도와 기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1998년 창립했다. 성폭력 피해 장애여성을 위한 상담 및 지원활동, 장애여성독립생활 지원 사업, 발달장애 여성을 위한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사무국장은 "장애인 복지 정책은 출발부터 시설중심에 맞춰지다보니 대규모 시설들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며 "최근 지역사회 소규모 거주시설 중심으로 정책 방향이 바뀌었지만 장애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직도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장애인거주시설이 주로 대규모 시설 형태로 설치되어 왔다. 하지만 '폐쇄성'으로 인해 학대 및 인권침해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1년 장애인복지법을 개정 신축 장애인거주시설은 30명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소규모화 정책을 실시 중이지만 성과가 미미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장애인거주시설 소규모화 정책의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정부는 2015년 100명 이상의 시설 비율을 13.8%로 낮추고 전체 장애인거주시설 대비 30명 이하 시설 비율이 77.8%에 이르는 초과실적을 이뤘다고 했지만, 이는 실상과 다르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입주 정원이 4명인 공동생활가정을 통계에 넣어 실적을 높게 잡았다는 주장이다. 장애인거주 시설 수와 입주자 수로 파악하면 30명 초과 대규모 시설에 64.7%가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 거주시설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장애유형별로 구분되어 있는 게 대부분이에요. 장애여성이 어려워하는 점이 무엇인지 등 성별로 세분화해 제대로 조사한 실태조사를 찾기가 어렵죠. 이는 곧 '시설'이라는 큰 장벽 안에 장애라는 이유만으로 성별조차 지워져야 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겁니다."

이 사무국장은 거주시설 내에서 '성'과 '재생산'이 통제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모자보건법 제14조1항에 따르면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등이 있는 경우 낙태가 가능합니다. 예전에 국가 차원에서 한센인에게 낙태와 단종수술을 강요한 일과 마찬가지죠. 생명이 존엄하다고 말은 하지만 국가가 생명의 가치를 따지고 있었던 겁니다. 모자보건법 폐지나 전면 개정을 통해 성과 재생산권리를 보장하는 법이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죠. 형법상 낙태죄 처벌 조항을 폐지하고 비범죄화하는 속에서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도 마련될 겁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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